후허하오터시 (Hohhot)
한나라가 설립되었던 시기 제후국인 대나라가 이 지역일대에 설치되었으며, 북방민족에 대한 방비를 위해 운중군에서 호흐호트시 동부지역에 정양군을 분리신설했다. 오초칠국의 난 이후 한나라 직할군으로 들어왔다.
후한말기 중원의 혼란과 북방민족이던 선비족의 성장으로 인해 전한대부터 이 지역에서 살던 한족들은 남부로 이주하고 선비족이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선비족들 중 탁발선비가 호린게르 현에 있던 성락을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고 다퉁 시, 숴저우 시일대를 약탈했다.
1565년에 몽골의 투메드 알탄 칸에 의해서, 투메드부의 지배 지역에 유입된 한인 정주민을 거주시키는 마을로 건설된 중국식의 성곽도시 바이신(大板升)이 후허하오터의 기원이 되었다. 바이신은 중국어 백성의 음역이다. 투메드부 유목 국가의 주요 영주 지배하에 있는 유목민은 지도자 가계의 혼인이나 분가 등의 이유로 분할과 융합이 빈번한 유목 집단 단위의 소속 의식을 강하게 가지며, 본래는 한인식 성의 개념은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동식 주거인 유르트에 거주하며 도시 내의 주거용 거주지에서는 거부감을 강하게 느껴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한인용 주거지를 위해서 만들어진 도시에 백성의 명칭이 부여된 것은 한인식 성의 개념을 가지지 않는 유목민에게 부계의 성을 부여하여, 동성의 귀속 의식을 강하게 하고, 도시 정주생활을 좋아하는 한인의 거주지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1571년에 알탄 칸이 명나라와 강화를 맺고 순의왕의 칭호를 받으면서 국경무역이 인정되자, 명나라가 귀화성이라는 부르는 후허하오터는 중국에서 몽골 고원으로 들어오는 물자의 집적지가 되어 번창했다. 알탄은 만년에 달라이 라마에 귀의해 티베트 불교로 개종했기 때문에, 후허하오터에는 수많은 티베트 불교 사원이 건립되어 오르도스 지방의 정신적 중심지가 되었다.
투메드부는 몽골과 중국 무역의 이권을 독점했기 때문에, 그 정주 거점인 후허하오터는 급속히 발전하지만, 1628년에 차하르의 링단 칸에 빼앗겼다. 게다가 1634년, 링단 칸이 병사하면 만주 민족의 후금이 후허하오터를 점령하고, 내몽고 전역을 지배해 1636년에 국호를 청이라고 고쳤다.
청은 귀화성의 북동쪽 근처에 수원성(綏遠城)를 쌓고, 오르도스 지방의 방위를 담당하는 팔기의 주둔지로 했다. 귀화성과 수원성은 아울러 「귀수」라고 불려 청대 이후, 중앙정부의 직할지로서 내몽고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후, 1913년에 귀수의 행정체가 귀화현에서 귀수현으로 개명되고, 1950년에 시로 승격하여 후허하오터시가 되었다. 1985년 국무원에 의해 전국역사문화명성으로 지정받았으며, 1992년에는 연변 개방성시로 지정되었다.
지도 - 후허하오터시 (Hohhot)
지도
나라 -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기 |
수도는 베이징시이며, 최대 도시는 상하이시이다. 이 밖의 주요 도시로는 광저우시, 난징시, 시안시, 푸저우시, 칭다오시, 충칭시 등이 있다.
통화 / 언어
ISO | 통화 | 상징 | 유효숫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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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Y | 런민비 (Renminbi) | Â¥ or å…ƒ | 2 |